꾸밈 노동, 탈 코르셋 1

요즘은 여성들 사이에서 스스로를 가꾸고, 꾸미는게 노동이고, 사회적인 억압(코르셋)의 증상이라고 흔히들 말해진다. 그리고 그런 생각으로 '꾸밈노동'을 그만 두는건 그런 억압으로 부터 자기해방을 이룩해낸다는 의미로 '탈 코르셋'이라 일컬어진다. 스스로를 가꾸는게 부담스럽다면 그저 안하면 그만일 일이다. 그러나 본인이 좋아서, 남의 눈에 맞추려 꾸며왔던 것을 억압 받아왔던 역사라 말한다면 그런 논법에는 문제가 많다. 그건 스스로가 얼마나 비자주적이고 비주체적이었던지에 대한 고백과 다름 아닐 뿐이다. 물론 아름다움에 관한 기호라는 것이 세상에는 있다. 예쁘고 잘꾸미고 잘생긴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대접받고, 추한 인간은 흔히 멸시와 사회적인 불이익을 받게 된다. 여성들이 매 외출마다 몇 시간씩 화장대 앞에서 얼굴과 머리를 손보는 강박이 이와 아예 연관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이 지닌 선호의 압력과 사회적인 억압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후자는 인간 사회에서 일종의 법칙적인 원리로 작용하며, 원천적으로 거부를 행사할 수 없게 되어있으나, 전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그것이다. 예컨대 전형적인 '억압'의 사례인 노예 제도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러한 제도 하에서 노예로 간주되는 사람이 스스로를 자유인이라 자처하고 그처럼 행동한다고 해서 그러한 행동이 법적, 관습적으로 용인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실제로 그런 제도하에서 그런 행동은 지배계층의 폭력을 유발할 뿐이다. 물론 대대적인 봉기로 그러한 세태를 바꾸는게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건 말 그대로 기존의 제도, 시스템을 뒤집어 엎는 선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시스템이 변하지 않는한, 억압은 변하지 않으며, 늦춰지지도 않고, 거부되지도 못한다. 반면에 요즘의 많은 여성들이 '코르셋'이라 부르는 '꾸밈 노동'은 어떠한가. 비록 여성들이 스스로를 가꾸는게 일반적인 세태이지만, 개인의 결심만으로 얼마든지 그러한 시류로 부터 분리되는 것이 가능하며, 여기에는 '혁명'도 필요없다. 화장을 하지 않거나, 머리를 기르지 않는다고 해서 법적인 처벌을 받을 일도 없고, 생김새가 아름답지 못하다는 이유만으로 직장에서 해고 되거나, 불가촉 천민 대우를 당할 염려도 없다. 주변 사람들로 부터 "니 꼬라지가 그게 뭐냐." 정도의 면박을 들을 수는 있겠지만, 그게 여타의 '오지랖'에 비해 특수한 강도의 것도 아니고, 그 이상의 강요에 '탈 코르셋'에 대한 의지를 꺾일 일은 없다. 물론 가꾸는 것을 포기하는 만큼, 타인에게 호감을 얻을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노력을 그만두는 만큼, 노력의 대가를 잃게 되는건 세상의 당연한 순리이다. 그건 탈 코르셋을 선택한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위험이며, 여기에 불만을 제기하는건 투자없는 대가를 기대하며, 스스로의 유아성을 증명하는 꼴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 상실의 위험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지도 않다. 못생겼다고 누가 죽이거나 먹고 살 길이 막히는 것도 아니니까.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무엇이든 하기 싫으면 안해도 좋고, 법에서 명시하는 자유가 그것을 보장한다. 그런데도 누가 누구를 억압하고, 코르셋을 조이고 있다는 말인가?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고, 따라서 얼마든지 그만둘수 있었던 일을 그만 두지 못했던 데에 탓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건 자주적인 모티브를 상실한 스스로의 비겁함이지 가만히 있는 세상과 타인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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